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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mimi memo 2023. 11. 3. 21:03

우리는 이중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같은 수레에 묶여 서로 자기 쪽으로 미친 듯이 끌어당기는 두 마리 말과 같은, 기쁨과 고통, 웃음과 그늘이라는 두 줄기 피가 우리 마음에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러니 적절한 보폭을 찾고 올바로 판단하려 애쓰는 눈밭의 기수들처럼 앞으로 나아가자. 그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이 때론 얼굴을 때리는 낮은 나뭇가지처럼 우리를 쓰리게 하고, 목덜미로 달려드는 황홀한 늑대처럼 우리를 물어뜯는다 해도. 
 
내 첫사랑은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다. 내 첫사랑은 늑대다. 털과 냄새와 상앗빛 누런 이빨과 미모사 같은 노란 눈, 산처럼 풍성한 검은 털에 노란 별빛의 반점이 있는 진짜 늑대. 9p
 
나는 이미 일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즉시 좋아하거나 혹은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녀를 곧바로 좋아한다. 19p
 
우울증이 뭔지 아니? 월식 본 적 있어? 우울증은 월식 같은 거야. 달이 마음 앞에 슬며시 끼어드는 거야. 그러면 마음은 자신의 빛을 더는 내지 못해. 낮이 밤이 되는 거란다. 우울증은 부드러우면서 캄캄해. ... 꼬마야, 과자를 만드는 것과 사랑하는 건 비슷하단다. 얼마나 신선한지가 문제거든. 그리고 모든 재료는 제아무리 씁쓸한 재로라 해도 달콤한 걸로 바뀌지. 그녀가 하는 말을 전부 알아듣지는 못한다. 아니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다만 새들을 가로지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뿐이다. 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는 놀란 기색도 없이, 오히려 행복한 시선으로 나를 본다. 21p
 
당신이 사랑받을수록 사람들은 당신을 더 사랑한다. 사랑받기 위한 비법은 관계가 시작될 때에 있다. 무엇보다 사랑받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도, 갈구하지도, 원하지도 말아야 한다. 미친다는 건, 미치는 걸로, 울면서 웃는 걸로, 웃으면서 우는 걸로 자족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결국 광기의 빈터로 이끌리고, 환심을 사는 데 관심조차 없는 사람에게 매료된다. 27p
 
웃음은 나보다 훨씬 강하다. 나는 진지할수록 웃는게 좋고, 그건 엄마에게 물려받은 기질이다. 이름들은 진지하다. 성은 태어날 때부터 당신 위로 떨어지고, 나이가 들수록 두툼한 옷 속으로 스미는 가랑비처럼 점점 더 무거워진다. 그 때문에 경찰들은 내 가족을 찾는 데 곤란을 겪었으나 내게는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나에겐 언제나 내가 해야 할 일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건 바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그저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는 일뿐.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난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란 걸 전혀 모른 채 몇시간이고 나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옷이나 향수를 바꾸듯 각각의 사람에게 새로운 이름으로 다가간다. 물론 진짜 이름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진짜 이름이 무슨 소용인가? 나는 길을 가다가 친구들을 얻고 그들의 성을 물어본 후, 놀라울 만틈의 뻔뻔함으로 이제 네 이름은 이렇게 저렇게 불릴 거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늘 좋아했다. 새로운 이름을 주는 것은 새 피를 수혈하는 것과 같다. 그건 사랑의 행동이며, 연인들의 특권이다. 29-30p
 
뚱보(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깨달은 게 있다. 행복은 분리된 음이 아니라, 두 음이 서로 퉁겨 튀어 오를 때 생기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불행은 당신과 상대방의 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이탈할 때 찾아온다. 우리가 겪는 가장 심각한 분열은 다른 어디도 아닌 리듬에서 나온다. 43p
 
어머니는 넘치는 사랑을 받은 사람이어서, 하루의 모든 순간을 빽빽하게 채우며 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그들은 세상이 그들 것이라 느끼게 만들고, 자기가 벌이는 법석을 꽤나 자랑스러워 한다. 하지만 사람은 사랑받을 때 세상에 무관심해지며 둘러볼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어머니는 사랑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떠받들었고, 남자들은 그녀를 숭배했다. 그녀에게는 증명해 보이거나 이루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시간을 허송하며 침대에 머무를 수 있었다. 내 어머니, 그녀는 세상을 믿지 않았다. 그 점에서 나는 그녀의 딸이다. 그녀는 오로지 사랑만 믿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만 믿을 때 아침 일찍 일어날 기분 따위는 생기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사랑이 거기 있기에 혹은 사랑이 모자라서 이불 속에 머물러 있다. 44p
 
누군가 당신을 사랑할 때, 그는 당신에게 지상의 집을 제공한다. 집은 돌이 아닌 사랑으로 만들어지기에. 62p
 
빛이 내게 말한다. 열어, 어서 열어 봐. 놀라게 해 줄 게 있어. 다른 모든 날과 엄연히 다른 하루는 언제나 놀랍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핀다. 나는 작고 특이한 것들을 잘 보곤 한다. 아니, 그런 것만 본다. 이 꽃들도 그렇다. 67p
 
나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설명을 잘했는지 모르겠다. 잉크는 구매할 수 있으나 가벼움을 파는 상점은 없다. 가벼움이 오거나 안오는 건 때에 따라 다르다. 설령 오지 않을 때라도, 가벼움은 그곳에 있다. 이해가 가는가?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밭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일할 때 들려오는 수도원 종소리에, 활기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 풀잎을 씹듯 수천 번 중얼거린 이름에, 쥐라산맥의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모퉁이를 돌아가는 빛의 요정 안에, 슈베르트의 소나타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가난 속에, 저녁 마다 덧창을 느릿느릿 닫는 의식에, 청색, 연청색, 청자색을 입히는 섬세한 붓질에, 갓난 아기의 눈꺼풀 위에, 기다리던 편지를 읽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다 열어보는 몽글몽글한 마음에, 땅바닥에서 '팡'하고 터지는 밤껍질 소리에, 꽁꽁 언 호수에서 미끄러지는 개의 서투른 걸음에, 이 정도로 해두겠다. 당신도 볼 수 있듯,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69p
 
방금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인식이라 해도 좋다. 누구든 나에게 결코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기숙학교는 그때 생각하자. 드디어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아주 간단할뿐더러, 기숙학교뿐만 아니라 한참 후 결혼이나 직업, 그밖의 모든 일에 활용 가능한 방법이다. 그건 바로 그때가 되면 생각하는 것이다. 75p
 
하지만 사랑은 다른 어디에도 아닌 사소한 것들에 깃들어 있거든. .. 내가 열두 살이나 열 세 살쯤 됐을 때 할머니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어. 할머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에요? 난 그때 할머니가 해 주신 답을 잊을 수가 없어. 아가야, 가장 중요한 건 즐거움이야. 누구도 너한테서 즐거움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라. 할머니는 '즐거움'이라고 말했어. 나는 그게 종교인들이 말하는 '기쁨'이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그런 사람들과 어울린 적이 없어. 그 후, 난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지. 사실 내 남편은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어. 하지만 아주 단순한 이유였단다. 결혼할 때 내 마음에는 즐거움이 있었어. 그런데 즐거움이 떠나 버린 거야. 그래서 이혼한 거지. 87p
 
살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할 말이 무엇이 있을까? 당신과 같은 땅에서 살아가는 잠시의 시간 동안 하게 되는, 안녕, 잘 자, 사랑해, 나 아직 여기 있어, 같은 말 외에. 말들은 변하고, 목소리만 남는다.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목소리, 인사하고, 반복하고, 내가 여기 있으며, 따라서 너도 여기에 나처럼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 왜 더 지어내야 하는가, 주고받기에는 이것만으로 충분 한데. 101p
 
때때로 나를 잠식하는 이런 생각을 경계해야만 한다.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날 괴롭히는 생각. 그건 우리 관계가 전부 가짜라는 생각인데, 그보다 더 나쁜 건 우습다는 생각이 다는 것이다. 그렇다. 때로는 가장 깊은 감정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감정에는 지울 수 없는 희극적 요소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정의 깊이는 사랑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때가 많고, 모두 이기심과 연관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우리가 우는 것은 자기 자신 때문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이 생각 자체는 그리 어리석지 않지만, 그런 생각 뒤에 슬픔이 따라온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진실이란 게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슬픔에 관해서는 알고 있다. 슬픔은 다른 무엇도 아닌 허구라는 걸. 116p
 
아버지를 보던 판매원의 눈길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굴욕의 경험은 사랑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잊히지 않는다. 나는 영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영혼이 육체의 어느 부분에서 증발하여 완전히 사라지는지는 아주 구체적으로 안다. 그곳은 눈동자 속의 가장 작고 어두운 부분, 바로 경멸이 자리 잡은 곳이다. 더 꼴사나웠던 건,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꺼낸 지폐 뭉치 앞에서 판매원의 눈이 다시 반짝였고 얼굴이 활짝 펴졌다는 것이다. 사람의 눈은 늑대의 눈보다 훨씬 변화무쌍하다. 그 눈에서 보이는 건 더할 수 없이 끔찍하다. 118p
 
사랑 속에서 처음으로 나는 영원한 나이를 갖는다. 124p
 
음악은 기다림, 피곤, 지루함으로 이루어진 투박한 삶을 사로잡고, 평범한 날들의 실체를 잊으려 굳이 애쓰지 않은 채 그런 날들을 자신의 기반과 자양분과 비상의 토양으로 만든다. 125p
 
누구도 노인들을 오래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노인들조차 그렇다. 127p
 
지혜는 흔히 말하는 것과 달리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며 마음은 시간 안에 있지 않다. 128p
 
진정한 삶은 비밀스럽고, 은밀하고, 훔치는 거야. 이슬비를 맞으며 걷고, 포장도로 위에 울리는 구두 굽 소리에 기뻐하고, 책에서 문장 하나를 뽑아내어 잠시 마음에 담고, 창밖을 바라보며 과일을 먹는 것, 그것 역시 속이는 거야. 남편과는 상관없는, 전혀 상관없는 순수한 기쁨을 밖에서 얻기 때문이지. 133p
 
내 마음을 사롭잡는 것은 침묵이다. 내 아버지의 묵직한 침묵이나 요양원의 침묵이 아니라 쥐라산맥 숲속의 침묵, 백지 같은 침묵이다. 일요일이었으나 이런 시설에서는 매일이 일요일이다. 나는 벽과 창문과 더러운 유리창, 빈 의자들, 리놀륨 바닥을 바라보았다. 불행은 이 방 안에 있지 않고 젊은 진행자가 여전히 으스대는 화면에 있었다. 불행은 사방에서 지글대는 배경음이며, 사랑과 침묵을 방해한다. 139p
 
호텔 주인이 차를 빌려주어서 호수 지역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가끔은 그가 동행한다. 가는 동안 우리는 세 마디 말도 채 교환하지 않는다. 세상에, 얼머나 끝내주는 휴식인가. 말은 사람들을 묶고 얽어 버린다. 가족은 말을 통해 만들어진다. 140p
 
나는 내면의 결핍과 고통으로 시간 읽는 법을 배웠고, 다른 것들도 그렇게 배웠다. 나는 고통을 좋아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절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훌륭한 교사라는 사실은 아주 잘 안다. 우리는 우리와 가까워진 사람들을 죽이느라 세월을 보내고, 우리 역시 죽임을 당한다. 은총은 지혜와 기쁨과 온유함을 유지하며 이 모든 죽음을 극복하는 데서 온다. 시커멓게 불타 버린 숲속의 앵무새처럼, 은총은 죽어버린 삶이라 해도 그 속에 있다. 누구도 아닌 나의 신이여, 나에게 매일 일상의 노래를 주소서.146p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건 약간의 평화와 단순한 기쁨, 흔하디 흔한 공기다. 147p
 
오후를 집에서 혼자 보낸다. 혼자인 기쁨을 맛본지 얼마나 되었던가? 혼자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은 사랑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처럼 달콤하다. 150p
 
로망의 논점과 주장과 강조점과 결론은 "나는 너 없이 살 수 없어" 였다. 하지만 로망, 내 오랜 친구 로망, 그게 사랑과 무슨 상관이 있어? 우리는 당신이 없으면 괴롭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와 함께 할 수는 없어. 적어도 그 사람이 자식이나 어머니가 아니라면 말이야. 로망, 나는 당신 엄마가 아니야. 우리가 함께 살아온 것들로 나는 충분히 행복해. 그리고 내가 없다고 할수 없는 일도 없고, 내가 없다고 살 수 없는 사람도 없어. 153p
 
나의 늑대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눈에 비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들이 다가오는 것 같을 때라도 실은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것과, 모든 건 처음부터 사라지며 소멸해 간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절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건 단순한 생각이다. 그 때문에 오히려 주저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생각으로 나는 이 순간에도 노래 부를 수 있다. 154p
 
부부로 산다는 건 불가능한 다른 모든 일처럼 어려운 일이다. 사실 무엇이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나를 기쁘게 하는 걸로 충분하다. 내게는 ㅇ비밀이 하나 있다. 삶이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내가 그것을 잊으려는 찰나에 나를 만나러 온다. 그러니 무엇 하러 인생을 걱정하겠는가? 162p
 
부모, 남편, 친구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장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품은 사랑, 우리를 충부히 안다고 믿는 사랑에서 벗어나야만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을 것들을 할 때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설사 그들에게 말한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고, 붙잡을 수 없고, 그들이 던져 준 사랑의 망토로 덮을 수 없으며, 우리 속에 머물러 우리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건 천사 혹은 늑대의 일부다. 178p
 
가끔은 일단 저질러야 한다. 이해하느 것은 그다음이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 일을 왜 했는지 깨닫게 된다. 1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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