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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mimi memo 2023. 8. 18. 23:51

민주주의의 평등은 생각하고 말하는 자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거라네. 그 사람만의 생각, 그 사람만의 말은 그 사람만의 얼굴이고 지문이야. 용기를 내서 의문을 제기해야 하네. 간곡히 당부하네만, 그대에게 오는 모든 지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지 말게나. 40p


지우개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지. 작고 아름다운 것들. 요즘엔 그런 것들로 공백을 채워나가고 있어. 세 줄로 된 글. 3행시라고나 할까. 가령 사람이 발톱을 갂는 모습을 상상해보게. 참 청승맞아 보이지? 손톱은 괜찮은데 발톱은 이렇게 돌아 앉아서 혼자서 웅크리고 깎게 되거든. 그런 내 모습을 내가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애틋해. 어느 날 엄지발톱 깎다 보니 새끼발톱이 보이더라고. 80년 가까이 존재감 없이 제일 고생을 많이 한 놈. 너 거기 있었구나. 이지러지고 피맺히고 애쓴 놈이 제일 작은 너로구나. 그때 딱 몇 줄만 쓰는 거야.

발톱 깎다가
눈물 한 방울
너 거기 있었구나, 멍든 새끼발가락 _ 67p

결정된 운이 7이면 내 몫의 3이 있다네. 그 3이 바로 자유의지야. 모든 것이 갖춰진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 그게 설사 어리석음일지라도 그게 인간이 행사한 자유의지라네. 아버지 집에서 지냈으면 편하게 살았을 텐데, 굳이 집을 떠나 고생하고 돌아온 탕자처럼. 어차피 집으로 돌아올 운명일지라도, 떠나기 전의 탕자와 돌아온 후의 탕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네. 그렇게 제 몸을 던져 깨달아야, 잘났거나 못났거나 진짜 자기가 되는 거지. 알겠나?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수만 가지 희비극을 다 겪어야 만족하는 존재라네. 85p

오랫동안 인터뷰어로 살아오면서 작게나마 깨달은 게 있다. 질문 하는 한, 모든 사람은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질문은 자기 모순적이고 연약한 인간이 이 미스터리한 세계와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며, 내가 낯선 타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94p

뜬소문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게나. 있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진 풍문의 세계에 속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싱킹맨thingking man이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해야 하네. 어른들은 머리가 굳어서 '다 안다'고 생각하거든. '다 안다'고 착각하니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거 묻지 말라'고 단속을 해. 그런데 쓸데없는 것과 쓸데 있는 것의 차이가 뭔가? 잡초와 잡초 아닌 것의 차이는 뭐냐고? 그건 누가 정하는 거야? 인간이 표준인 사회에는 세상 모든 것을 인간 잣대로 봐. 그런데 달나라에 가면 그거 다 소용없다. 105p

백번을 말해도 부족하지 않아. 생각이 곧 동력이라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력 속의 세상이야. 바깥으로부터 무지막지한 중력을 받고 살아. 억압과 관습의 압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 가벼워지면서 떠올라야 하지.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 생각이 날개를 달아주거든. 그래비티, 중력에 반대되는 힘. 경력이 생기지. 가벼워지는 힘이야. 그런 세계에서는 사실 '사회성'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아. 사회성 좋은 사람이 위대한 철학자가 되고 예술가가 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성공한 사람들... 뒤집어보면 다 실패자들이야. 양면이 있는거야. 109p

자네도 짐작하겠지만, 나는 그동안 집단주의, 국가주의를 경멸해왔네. 바글바글한 데는 끼고 싶지 않아서 해수욕장도 안 갔어. 사람들 잔뜩 있는 곳에서 군중의 한 사람으로 끼어 있는 게 싫었다네. 보들레르도 그랬잖아. '주여, 내가 저들과 똑같은 숫자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쓰게 하소서.' 인간은 다 그래야 하는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떼'로 사는 거라네.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거지. 그게 어떻게 인간인가? 그냥 무리 지어 사는 거지. 인간이면 언어를 가졌고, 이름을 가졌고, 지문을 가졌어. 그게 바로 only one이야. 무리 중의 '그놈이 그놈'이 아니라 유일한 한 놈이라는 거지. 그렇게 내가 유일한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거야.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남을 끌어안겠나? 내가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있어? 그런데 '나 없는 우리?' 아니 될 말씀이야. 큰일 날 소리지. 그래서 내가 사이를 강조했잖아. 나와 너 사이. 그 사이에 나도 있고 너도 있다는 거지. 자네와 나 사이에 interview가 있는 것처럼. 126p

착하지 않아도 죄책감 느끼지 않고, 예쁘지 않아도 개성으로 긍정하며, 그 '다름의 값'을 치러야 한다면 기꺼이 타인의 미움까지도 감수하겠다는 용기 있는 사람들, '진짜 나'로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 참자기를 거부하는 거짓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스마트한 개인들이 사는 세상. 점차 이 세계는 그렇게 '진'의 세계를 중심으로 수만가지 바코드의 선과 미를 재배열하며 나날이 팽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37p

럭셔리한 삶. 나는 소유로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아.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똑같은 시간을 살아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은 산 게 아니야. 스토리텔링이 럭셔리한 인생을 만들어. '세일해서 싸게 산' 다이아몬드와 첫 아이 낳았을 때 남편이 선물해준 루비 반지 중 어느 것이 더 럭셔리한가? 남들이 보기엔 철 지난 구식 스카프라도, 어머니가 물려준 것은 귀하잖아. 하나뿐이니까. 우리는 겉으로 번쩍거리는 걸 럭셔리하다고 착각하지만, 내면의 빛은 그렇게 반짝거리지 않아. 거꾸로 빛을 감추고 있지. 스토리텔링에는 광택이 없다네. 하지만 그 자체가 고유한 금광이지. 154p

interest라는 영어 단어는 관심, 재미라는 뜻도 있지만 이익, 이자라는 뜻도 있어. 우리가 이익을, 이자를 내려면 애초에 관심 있는 것, 흥미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interest가 출발이지. 그게 모든 일의 순서고 이치라네. 154p

인간이 태어나서 사는 과정이 그래. 아기 때는 어머니 치맛자락 붙잡고 떨어지면 죽는 줄 알지. 그러다 대문 밖으로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들하고 정신 빼놓고 놀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지. 그러다 부르면 화들짝 놀라서 원위치로 가는 거야.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거라네.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그래서 내가 일관되게 얘기하는 것은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라는 거야. 까마귀 소리나 깜깜한 어둠이나 세계의 끝, 어스름 황혼이 아니지.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장미 밭 한복판에 죽음이 있어. 세계의 한복판에. 생의 가장 화려한 한가운데.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야. 고향이지. 젊었을 때는 관심이 최우선이었어. 사오십대 되니 관찰을 알겠더군. 늙어지니 관계가 남아. 관계가 생기려면 여러 대상에 한꺼번에 기웃거리면 안 돼. 데이트하는 곳에 가봐. 열 명 있어도 한 명만 보이잖아. 그 한 명만 관찰하는 거잖아. 사진 찍을 때 전체 풍경이 잡혀도 내 눈이 가는 한 곳에 초점 맞추듯이. 어차피 우리는 전체를 찍을 수 없어. 157p

선생의 고백처럼 이미 다 알던 것이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 우리의 지각은 저 아래서부터 꿈틀댄다. 젊어서도 알았지만 늙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육체의 명료성과 지각의 명료성은 그렇게 가뭄에 비 내리듯 서로의 상호성으로 몸을 적셔 늦지 않게 우리르 지혜의 바다로 이끈다. 159p

도스토옙스키가 사형 5분 전에 쓴 글 봐. 사형수한테는 쓰레기도 아름답게 보인다네. 다시는 못 보니까. 날아다니는 새, 늘 보는 새가 뭐가 신기해? 다시는 못 본다, 저 새를 다시는 못 본다... 내 집 앞마당에 부는 바람이 모공 하나하나까지 스쳐간다네. 내가 곧 죽는다고 생각하면 코끝의 바람 한 줄기도 허투루 마실 수 없는 거라네. 그래서 사형수는 다 착하게 죽는 거야. 마지막이니까. 163p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167p

타고나. 모든 아이들이 다 타고나. 천재로 태어나서 둔재로 성장 할 뿐이지. 하나님이 주신 것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갖고 사는 사람들이 천재라네. 그 재능을 어머니가 줬겠어? 아버지가 줬겠어? 학교 선생님이 줬겠어? 하늘이 준 거지. 태아는 하늘이 준 재능으로 엄마 배 속에서 10개월을 살아. 그리고 태어날 시간을 스스로 정해서 나온다네. 제왕절개 수술을 하지 않는 한 그래. 아이는 스스로 태어나는 거야. 엄마의 의지로 낳은 게 아니야. 아이가 아이의 의지로 나온 거지. 생일날이 그 의지와 힘이 가장 만개한 날이야. 출생일만은 하나님이 주신 날짜 중에 내가 골라서 나온 것이거든. 그 이후로는 전부 남의 간섭과 보호를 받고 산다네. 173p

오늘이 제일 아름다워. 지금 여기. 나는 오늘도 내일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을 신뢰하지 않아. 신념 가진 사람을 주의하게나. 큰일 나. 목숨 내건 사람들이거든. 육탄 테러하는 자들이 다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네. 나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8백만 명 유대인을 죽였어. 관점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변하는게 인간사인데 '예스'와 '노우'만으로 세상을 판단하거든. 메이비maybe를 허용해야 하네. 메이비가 가장 아름답다고 포크너가 그랬잖아. '메이비maybe' 덕분에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다리는 거야. 174p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마라. 방황하라. 길 잃은 양이 돼라.'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다' 의 성경 구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길을 잃어야 한다는 선생의 말은 깊고도 깊어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것은 용기의 과제이기도 했고, 믿음의 문제이기도 했다. 길을 잃어도 영영 미아가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거친 길에서 내 손으로 따먹는 열매, 그 열매에서 맛보는 목자의 은혜와 마침내 성숙한 탕자로 돌아올 집이 있다는 안식까지. 그것이 눈보라 치는 우주의 회오리 속에서 기어이 '자기'를 사는 인간의 아름답고 기구한 운명이라고 그는 가르치고 있다. 177p

공자가 그러지 않나.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는 식사를 잊어버린다고. 자는 걸 잊고 먹는 걸 잊어. 의식주를 잊어버리는 거지. 그게 진선미의 시계고, 인간이 추구하는 '자기다움'의 시계야. 그게 아이덴티티거든. 자기 무늬의 교본은 자기 머리에 있어. 그걸 모르고 일평생 남이 시키는 일만 하다가 처자식 먹여 살리고, 죽을 때 되면 응급실에서 유언 한마디 못하고 사라지는 삶.. 그게 인생이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나? 한순간을 살아도 자기 무늬를 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정해진 대로 살면' 그게 정말 행복일까? 아니야. 가짜 행복이네. 길 잃은 양이 된다는 것은 자기 의지대로 '큰 감자와 작은 감자'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라네. 화문석을 짜는 일이야. 돈을 받는 노동이라도 자기 생각이 들어가 있고 자기만의 성취의 기준이 있어. 그때 비로서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는 거야. 예술가가 되는 거야. 노동을 하는 순간에도 예술을 하고 있는 거야. 노예는 사회주의에도 있고 자본주의에도 있어. 반대로 예술은 사회주의에도 할 수 있고 자본주의에서도 할 수 있어. 단, 그러려면 자유의지가 있어야 하네. 길을 일탈해서 길 잃을 자유가 있어야 해. 그게 선이든 악이든 일단 나의 행위가 있어야 하는 거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인간은 신에 가까운 자유의지를 갖게 된 거야. 신이 그것을 허락한 거야. 신은 자유의지를 가져도 실수를 안 하는데, 인간은 실수할 수 있어. 악도 선도 행한다네. 그래서 선악과야. 그게 인간의 원죄인 거야. 181p

왜 어떤 이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혼돈의 쓰레기 더미에서 탈출하고, 어떤 이는 스스로를 '폐기물'로 정리하며 더 큰 죽음의 카오스로 뛰어들었을까. 죽은 자의 정돈된 절망과 산 자의 어지러운 희망 사이에서, 나는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세상은 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가득 차 있고,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극심한 무기력에 시달린다. 어쩌면 정리의 문제는 내 삶의 '컨트롤 키'에 관한 문제다. 185p

인간은 다 다른 삶을 살고 있어. 그러나 추위처럼 모두가 느끼는 감각이 있네. 인류 공통의 아픔이 있으면 내 추위와 남의 추위의 공감이 일어나는 거야. 외로운 섬, 무인도의 삶에서 광장의 삶으로 나갈 수 있는 거야. 최인훈이 쓴 '광장'도 결국 그런 이야기인거지. 골목이나 골방에 있는 사람은 남의 골방의 아픔을 모르거든. 그러나 추위로 확연하게 느껴지기 전까지는 오히려 '모른다'는 인정이 매우 중요하다네. 195p

눈물 값이 그렇게 비싼 거야.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준다네. 이제 박쥐가 걸리던 코로나도 인간이 걸리고, 닭이 걸리던 조류인플루엔자도 인간이 걸려. 그럼 무엇으로 짐승과 사람을 구별하겠나? 눈물이야. 짐승 중에 낙타도 코끼리도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정서적 눈물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어. 로봇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눈물은 못 흘린다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거라네. 215p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지. 그게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나온 그저 그런 사자성어가 아닐세. 실제로 위기 상황에 닥치면 인간은 두 가지로 딱 갈라져. 코로나 때를 생각해보면 알지. 스트레스 받아서 가족끼리 두들겨 패고 싸우는 사람들, 반대로 친해져서 모녀가 서로 트로트 부르고 끌어안고 가까워진 사람. 양극으로 나뉘지. 고난 앞에서 네거티브로 가면 인간은 짐승보다 더 나빠져. 포지티브로 가면 초인이 되는 거야. 인간이 저렇게 위대해질수도 있구나. 인간은 고난을 통해서만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그 모습이 비참이든 숭고든. 고난이라는 실전을 통해서만. 나도 마찬가지네. 이전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내가 되었지. 어떻게 이렇게 태연하고 관대해질 수 있을까 싶어. 뒤늦게 생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걸.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다는 말은 목사님 같은 소리가 아니야. 내 집고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내가 벌어선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함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231p

외로워보지 못한 사람. 내가 혼자라는 걸 느껴보지 못한 사람과는 대화해도 소용이 없다네. 외로움 속에서 자족을 배운 군자가 있기에, 세상의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거지. 한편으론 군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거라네. 자족을 이룬 사람이 군자, 못 이룬 사람이 예술가라고나 할까. 시나 소설은 그렇게 고립된 예술가들이 에고이스트적인 힘으로, 인격적으로 결함을 가진 채 세상에 내놓은 말들이야. 완성된 말은 아닐세. 그런데도 혼자 잘났다고 생각하고 혼자 못났다고 생각하니, 구제불능이지. 예술가들은 상처를 끌어안는 대신 예술적 재능을 받은 존재야. 236p

신과 생물의 중간자로 인간이 있기에, 인간은 슬픈 존재고 교만한 존재지. 양극을 갖고 있기에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 256p

리더라면 '사잇꾼'이 되어야 하네. 큰 소리 치고 이간질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여기저기 오가며 함께 뛰는 '사잇꾼'이 돼야 해. 275p

목적 같은 것 없어. 생명, 살아 있는 것. 그게 이 세상이라네. 눈물 나는 세상이라네. 277p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지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2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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