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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유

mimi memo 2023. 12. 12. 21:03

 

초보일 땐 모르는 것투성이고 주변에 온통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밖에 없고 나만 어설픈 오리새끼인 것 같아 민망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초보 시절 없는 일이 어디 있는가. 자동차 운전을 해도 초보운전 시절을 지나야 한다. 초보가 된다는 건 세계가 넓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또 초보자가 되기로 한다. 초보자는 늙지 않는다. 21p

 

나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누구나 그런 것보다도 훨씬 더 시각적 쾌락에 매료되는 사람이다. 카메라라는 기계를 다루는 것도 재미있다. 필름 냄새가 좋다. 기록을 남기는 행위는 그 자체로 즐겁다. 사진은 완벽한 놀이이자 표현이고 사교이고 거의 모든 것이었다. 사진을 더 잘 찍고 싶었다. 자기 전까지 내내 사진만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았고, 보는 만큼 실력이 느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동시에 내 사진을 연구했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 나는 뭘 잘하는지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40p

 

해외에서 한 번은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나는 티피컬하게 분류되는 게 싫었다. 서울 사람 말고, 한국인도 아니고, 어떤 개념에도 구속되지 않는 지구인 같은 게 되고 싶었다. 해외여행을 가서, 한국이 아닌 낯선 나라에서 만나는 내가 좋았다. 한국에서 당연한 것이 어떤 곳에서는 당연하지 않았다. 한국과 전혀 다른 곳인데도 또 어떤 것들은 똑같았다. 왜 다른지 왜 같은지 생각해보는 게 마냥 즐거웠다. 그럴수록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 같았다. 어떤 집단이 만든 고정관념에도 구속되지 않고 맨눈으로,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세상을 보는 게 좋았다. 47p

 

연사로 찍은 사진들 중 잘 나온 사진들을 고르고.... 모임 페이지에 올려서 공유했다. 곧 댓글이 달리고 엄지손가락이 올라왔다. 알람에 휴대폰이 계속 진동했다. 휴대폰을 든 두 손과 얼굴이 달아오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얼었던 손발이 녹듯이 몇 달 동안 얼어 있던 뭔가가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내가 한 일을 기뻐해주고 있다, 나도 쓸모 있는 존재인 건가.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상으로 생각하던 아니 인식조차 못했던, 고마움을 주고받는 것의 소중함.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기쁘게 하고, 쓸모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건 행복하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일들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그동안 나는 많이 아팠나 보다. 존재가 희미해지는 호텔 같은 방, 외로움과 무능감으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지 조금 알 것 같았다. 60p

 

여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 여행에서 경험하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그들과 나의 당연함이란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된다. '당연하지'라는 말이 얼마나 주관적이며 일방적인지도. '언제나 모두에게' 당연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여행하는 동안 '왜 다른가'를 묻다 보면 '무엇이 같은지'도 깨닫게 된다. 다르게 나타나는 겉모양 - 껍데기들,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는 것들을 하나씩 치우다 보면 비로소 사람 사는 본질이 드러난다. 우리는 모두 안전하고 싶고, 편하고 싶고, 배부르고 싶다. 나라마다 집의 재료와 모양새가 다르고 주로 먹는 음식의 맛도 다르지만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안전하고 배부르게 한다는 기본 원리는 똑같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이런 것들뿐이다. 우리는 즐겁고 싶고 행복하고 싶고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다. 124p

 

생명은 늙고 때가 되면 멈춘다. 정해진 끝을 향해 가는 가운데 지금 우리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하루에 더 충실하고, 더 사랑하고, 더 위해주고, 더 많이 웃고 싶어졌다. '더 잘해줄걸' 나중에 후회하면서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고 자책하지 않도록, 내가 너무 많이 해줘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렇게 살고 싶다. 135p

 

인간은 작고 아는 것이 없다. 먼 길을 달려 찾아간 몇 개의 폭포들은 제각각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름난 폭포들 사이에 이름 없는 폭포들이 더 많았다. 크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제각각의 멋짐이 있었다. 여기서 대접받지 못하는 이 폭포를 하나 떼다가 한국에 데리고 가면 단박에 가장 유명한 폭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139p

 

책을 썼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책을 쓰고 나면 다른 이가 쓴 책이 좀 다르게 보인다. 책날개를 펼치면 작가소개를 쓰기 위해 했을 고민이 보이고, 목차를 짜고 머리말을 쓰며 무슨 생각을 했을 지,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생생하게 보인다. 가르쳐보면 스스로에게 공부가 된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남이 만든 음식을 먹을 때 그 재료와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물건 파는 일을 해보면 물건 살 때의 마음이 달라진다. 팀원을 지나 팀장이 되어보면 팀원일 때는 몰랐던 뷰가 나타난다. 일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영상을 만들어보니 영상을 볼 때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159p

 

투자는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시간을 쓰고 돈을 써서 환경을 바꾼다.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만, 그것마저 안 하면서 되는 방법도 없다. 촬영용 조명을 사고 마이크를 샀다. 금세 노트북 하드가 꽉 찼다. 외장하드를 사도 잠시뿐,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유튜브를 검색해서 해결책을 찾아본다. 유튜브 영상 제작을 유튜브로 배우다니. 유튜브엔 좋은 스승님이 많았다. 모자이크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자막 넣는 법을 배우고, 색보정을 배웠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기술은 많지 않았다. 기술보다는 이야기가 중요했다. 그리고 자주 성실하게 올리는 것. 하지만 성실은 기술보다 어렵지. 160p

 

인간이란 어리석게도 구하기 어려운 것, 자신에게 없는 걸 추구한다. 영양 과잉의 시대가 되니 마른 몸을 아름답다고 하고, 뜨거운 여름에는 눈 내리는 겨울을 그리워하고, 시력 좋은 사람은 안경을 걸치고 싶어 한다. 시력 좋은데 안경 쓰고 싶었던 어리석은 사람, 나의 이야기다. 162p

 

남들이 하던 대로 따라 하지 않고 다시 보고 관찰하고 발견하고 개선하는 일, 해보고 나아지게 하는 일, 지금껏 불편 한 줄도 몰랐던 것들을 찾아 더 나아지게 하는 일, 애플로부터 그런 생각을 배운다. 애플이 발표회를 하면 풀버전 영상을 보며 그들의 생각을 듣는다. 신제품이 나오면 제품을 사서 써보며 그 생각을 체험하고 체화한다. 내가 어떤 좋은 생각을 했다면 그 일부는 늘 애플 덕이다. 173p

 

뜻밖의 순간에 나타나 시선을 빼앗는 것, 멍하니 보고 있다 보면 마음이 채워지고 힘이 나는 것들이 있다. 흐르는 물에 우리는 마음을 빼앗긴다. 파도가 들이치고 물러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나무 그늘의 흔들림, 타오르는 장작불, 난롯불, 촛불도 언제까지고 볼 수 있다. 물, 불, 바람 같은 것들, 리을(ㄹ)이 들어가는 자연은 멍의 샘이다. 멍의 샘은 자연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차멍도 있지, 높은 빌딩 창문 밖으로 멀리 보이는, 찻길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행렬. 특히나 강변북로처럼 신호등 없는 길이면 더 좋다. 한 시간도 보고 있을 수 있다. 여기엔 어떤 공통점이 있다. 짧게 보면 불규칙적, 길게 보면 규칙적이라는 것.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것 같지만 긴 틀 안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 새소리가 그렇고 흔들리는 나뭇잎이 그렇고 파도의 일렁임이 그렇다. 규칙적인 불규칙, 아니 불규칙한 규칙인 걸까. 184p

 

나를 생각한다. 나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다.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과 태도를 바꾸게 하는 일을 한다. 알게 하고 좋아하게 하고 사고 써보게 하고 이야기하게 하는 사람이다. 사게 하는 사람의 삶은 어떻게 한 권의 책이 될까. 이번엔 파는 이야기 말고 사는 이야기를 써야겠다. 사는 것을 통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꾼 이야기를 써야겠다. 파는 사람이 사면서 생각한 것들, 그러면서 사는 이야기, 그게 나에게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겠구나. 이 책처럼 10년을 두고 여려 번 읽어도 새로울 책을 쓰고 싶다. 아니, 욕심이다. 그저 10년 뒤에 스스로 읽어도 고치고 싶지 않을, 부끄럽지 않을 책을 쓰고 싶다. 아니, 아니다. 부끄럽고 싶다. 10년 뒤에 다시 읽었을 때 고치고 싶지 않다면 나는 그 10년을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10년 뒤에 다시 읽을 때 이 책에 써놓은 글이 부끄럽도록 계속 사고 또 살아야 겠다.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인 줄 알았던 많은 것들은 결국 내가 읽고 공감했던 사람들의 문장으로부터 온 거였다. 읽고 나서 곧 잊어도, 외우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해도 그 문장들은 내가 선택하고 움직이는 데 줄곧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문득 '내가 읽는 것들이 내가 된다'는 말이 말 그대로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읽으며 살아왔나 갑자기 생각한다.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읽어본다. 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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