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라는 말이 너무 추상적이라면 '돕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있을 때 공감의 수준이 높아집니다. 타인에게 감정이입한다는 것은 '그가 잘되도록 돕는 일'이자 '그의 행복을 바라는 일'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 정해진 일만 보려고 하면 정작 진짜 중요한 일을 못 볼 때가 많습니다.
소비자가 진정 바라는 건 전문가만 알아보는 디자인이 아니라 바로 이런 직관적 유용성'입니다.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에 대한 해결책을 떠올릴 방법은 오로지 평소 직접 소비자가 되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공감은 우리의 타깃 고객이 알아볼 것과 그렇지 못할 것을 구분하고,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남을 잔상을 유추할 때 시작됩니다.
저는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이야기에 대한 대답으로 '내가 도대체 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습니다. 좋아하는 걸 찾아서 그 분야를 직업으로 삼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사실 그런 경우가 흔한 건 아닙니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 정해지면,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그 주변을 계속 맴돌며,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좋아해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감각의 시작입니다.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겁니다. 친구의 부탁으로 디자인을 하는 마음과 10억 원이라는 비용을 받고 디자인을 하는 마음은 천지 차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이 10억 원짜리 일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의 결과물은 '받은 만큼만 일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결과물과 같을 수가 없겠죠. 그러니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감각이 생깁니다. 다시 말하지만, 감각의 시작은 마음가짐입니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세상의 흐름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며, 사소한 일을 큰일처럼 대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 이것이 감각의 원천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감각이 커지는 만큼 타인의 감각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상대의 감각을 존중하며 서로의 생각과 이유를 차분히 묻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합니다.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고 무슨 신발을 신을지, 또 어느 카페에서 커피를 살지까지,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의사결정의 연속입니다. 이 의사결정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일상이 됩니다. 그 일상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만듭니다. 이 결정에 따라 우리가 누구와 어울리고 어떤 기회를 갖게 될지도 정해집니다. 일상에서 수도 없이 마주하는 자잘한 결정을 모두 논리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감각이 중요합니다. 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같은 마음으로 타인을 존중하면서 감각을 만들어야 합니다.
상식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상이든 상식에 맞게 단순화해서 보면 본질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본질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자주 할까요? 혹시 어떤 걸 봐도 '저건 원래 저런 거야' 하고 넘기지는 않는지요?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습니다. 빵 한 조각을 봐도, 도시의 빌딩을 봐도 왜 그런지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 그게 바로 감각의 핵심입니다.
물론 오직 완벽한 아름다움만이 의미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음이 우리 삶 그 자체이며, 그 부족함의 조화가 더 고귀한 아름다움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모든 소비자가 그걸 바라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완벽한 아름다움만큼 자기다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더 아름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벽함'과 '자기다움'을 계속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브랜드는 누군가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입니다. 또 그게 바로 일의 본질입니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일하고, 나의 신념을 퍼뜨리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