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삶을 살아 가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 자기가 쓰는 힘의 근원을 알고 그 위에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을 쌓아 올리는 것을 꼭 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말한다. 즉 그들은, 잘 지은 건축물의 천장이 벽과 어울리고 지붕이 기둥과 잘 맞는 것처럼, 확실하고 의미 깊은 관계의 기본 원칙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저급한 행동이나 표현을 삼가는 사람들이다. p.31
자신의 육신과 생각을 다스리고 위로하는 방법에 대해 잠 못 이루는 밤만큼 제대로 가르쳐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를 부드럽게 감싸 주고 배려해 주는 것은 스스로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알며, 정신적인 아픔을 이해하고 인간적인 취약점을 감싸 주는 것은 참담한 고요 속에서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밤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내 왔는지 알아채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교육적인 가치 중에 다른 것들과 반드시 연관시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있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이다. 불면증은 경외심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학교다. 모든 사물에 대한 경외심, 초라한 삶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향기에 대한 경외심, 시나 다른 예술적 활동을 위한 최고의 조건으로서의 경외심. p.49
문화라는 재산은 그저 돈을 내면 살 수 있고, 돈을 낸 만큼 이용할 수 있는 그런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위대한 예술가가 자기 자신의 한계와 싸우고 내면의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만들어 낸 음악이, 연주회장에서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듣는 청중에게 쉽게 전해지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마찬 가지로 고난과 절박함을 이겨 내고 만들어 낸 철학자의 의미심 장한 언어가,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아 게으르게 책장을 넘기며 읽는 사람에게 잘 이해가 되리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날마다 개인적인 체험을 하면서 우리는 그 어떤 관계로 이루어진 우정이나 감정도 서로가 함께 하거나 혹은 직접 피를 흘려 사랑과 희생의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그것들이 온전히 남아 있지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쉽지만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진정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 대개 그러하듯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쾌락은 돈으로 살 수 있어도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 p.57
슬픔에 잠긴 채 혼자 멀리 떨어져 있다면 가끔은 아름다운 시의 구절을 읽고, 즐거운 음악을 들으며, 수려한 풍경을 둘러보고, 당신 생애에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려 보라! 당신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렇게 했다면 곧 기분 좋은 시간이 찾아올 것이며, 미래는 든든하게 여겨지고, 삶은 어느 때보다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p.59
행복과 고통은 우리의 삶을 함께 지탱해 주는 것이며 우리 삶의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을 잘 이겨 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것이라는 말과 같다. 고통을 통해 힘이 솟구치며 고통이 있어야 건강도 있다. 가벼운 감기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푹 쓰러지는 사람은 언제나 '건강하기 만' 한 사람들이며 고통받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고통은 사람을 부드럽게도 만들고, 강철처럼 단단하게도 만들어 준다. p.69
오직 신만이 주관하는 외적인 운명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면, 달콤함이든 참담함이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나 혼자 짊어지고 책임져야 한다. 내 삶은 때로는 힘겹고 불쌍하게 채워졌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나 가끔 내가 느끼기에도 멋있고 어려움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삶은 어둡고 슬픈 밤과 같아서 가끔 번개라도 쳐서 잠시나마 주변의 어두움을 당당하게 물리친 것처럼 보이게 해 주지 않으면 잘 견뎌 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하는 어두움은 우리 일상에서 반복되는 끔찍한 일일 뿐이다.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하루를 보내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일까?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아무 걱정거리가 없이 천진난만하게 자라나는 어린이는 그런 무미건조한 일상이 반복되더라도 아무런 고통을 받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사소한 일도 즐거워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특별한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다. p.64
나는 문득 우리가 우리의 삶을 너무나 사소하게 여기고, 시원찮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그 거장처럼 심오한 뜻을 가지고 거대한 틀을 만들며 신에게 간청하고 감사의 표현을 하겠는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하늘이 있는 풍경으로 더 자주 시선을 옮기고, 나무가 있는 자연으로 더 자주 발걸음 을 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더 확보하며, 아름다움과 거대함의 비밀을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말이다. p.77
수많은 기억들이 끝없이 떠올랐다. 얼마나 많은 햇살이 내 몸을 따뜻하게 데워 주고, 얼마나 많은 강물들이 내 몸을 식혀 주고, 얼마나 많은 길들이 나를 인도해 주고, 얼마나 많은 시냇물이 내 곁을 흘러갔던가! 나는 파란 하늘을 얼마나 자주 올려다보았고, 도저히 잊을 수 없을 만큼 얼마나 생동감이 넘쳤으며, 사람들의 사랑스러운 눈망울을 얼마나 자주 보아 왔던가! 또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사랑해 왔었나! 그런 순간들을 되새겨 보면 그것들은 다른 어느 순간보다 아름다웠다. 물론, 찻잔을 서서히 비우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아름 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지금 이 순간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p.97
마음속으로 집을 지을 계획을 세우거나 이혼 또는 수술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와 같은 문제나 그런 문제로 고심 중인 사람을 주변에서 눈에 띄게 자주 만나게 된다. 나는 독서를 할 때도 똑같은 경험을 하고는 한다. 어떤 인생 문제에 깊이 빠져 있을 때 일부러 찾지 않았는데도 바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p.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