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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의 단어

mimi memo 2024. 7. 20. 20:11

 

 

개인의 정체성과 그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는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의 정서와 사유 체계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때론 친밀한 사람 앞에서 꾸밈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가 마음의 민낯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다. 때론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짧은 글귀에 삶의 희노애락이 새겨진다. 때론 일기장 귀퉁이에 끄적이는 낯선 낱말이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의미한 단어는 없다. 우리가 자주 읽고 쓰고 떠올리는 모든 단어엔 각자의 삶이 투영돼 있기 마련이다. 11p

 

사람은 마음을 잃어버리면 자칫 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홀로 불행 속에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잡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일수록, 남들 처럼 행복해지려 애쓰기보다 마음의 균열을 메우고 일상을 정돈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하는지 모른다. 불행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일상에 가깝다. 17p

 

매 순간 우린 다른 기분으로 살아간다.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기분은 얇은 창호지와 비슷하다. 타인이 더러운 말과 행동으로 찌르면 힘없이 찢어지고 만다. 기분을 회복하려면 혼자만의 시간이나 나 아닌 다른 존재의 다정함을 접착제 삼아 마음에 고르게 펴 바른 다음, 시간이라는 바람 속에서 천천히 말려야 한다. 기분이 부서지거나 조각나는 건 한순간이다. 하지만 원래 상태로 복원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47p

 

굳이 한 가지 배경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때만 해도 회사를 그만두는 게 지상 과제였다고 말하고 싶다. 직장 생활을 할 때 회식 자리에서 상급자가 주는 폭탄주가 호환 마마보다 싫었고, 업무를 위해 나와 너무 다른 성향의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느 본능적으로 그곳을 빠져냐와야 한다고 느꼈다. 55p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그런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건 작가가 되겠다는 포부가 확고했기 때문이라기 보다 회사에서 탈출하고야 말겠다는 욕망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무언가를 향해 다가가려는 마음이 아니라 무언가에서 벗어나려는 마음 덕분에 낯선 길로 접어들었다고 할까. 누구나 그렇듯, 살다 보면 좋아하는 것 앞에서 느끼는 감정보다 싫어하는 것을 앞에 두고 느끼는 감정이 훨씬 환하고 선명하게 다가올 때가 있기 마련이다. 난 후자의 감정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56p

 

일찍이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류 문화의 기원을 놀이에서 찾았다. 문화에서 놀이가 나온 게 아니라 놀이가 문화를 낳았다는 주장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놀이에 빠져드는 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특성이다. 옳다. 모든 인간에겐 '놀이 본능'이 있다. 누구나 밥 먹는 시간도 놓칠 만큼 몰입하는 놀이가 있기 마련이다.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유희를 위해 아이 같은 마음으로 즐기는 소박한 행위나 활동 말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아무 목적성 없이 즐기는 유희적 활동의 효용은 상당하다. 우린 스트레스를 받거나 평소보다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있을 때 일이 아니라 놀이에 기댄다. 휘청거리는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놀이에 탐닉하는 시간이 현대인의 지친 영혼에 숨결을 불어넣어 준다고 할까. 61p

 

어쩌면 살면서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그러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진 사람은 대개 그리움과 미움이 혼재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또한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스스로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앞둔 사람은 후련함과 섭섭함이 버무려진 묘한 감정을 안고 마지막 출근을 하기 마련이다. 아마 우리 마음에서 솟아나는 감정을 칼로 자르면, 시루떡을 반으로 자른 모양처럼 다양한 감정들의 단면이 다층적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난해하게 꼬여 있듯이 말이다. 77p

 

나는 인간이 겪는 불행 중 대부분은 몸의 속도가 마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세상에 반응하는 속도의 불일치, 이로 인한 동요가 심해지면 우린 삶의 바다 한가운데서 균형을 잃고 물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109p

 

'기대다'라는 뜻을 지닌 한자 의는 사람 인과 옷의 의가 합쳐진 형태다. 사람이 추위를 피하려면 옷에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만큼 인간은 부서지기 쉽고 상처 입기 쉬운 존재다. 살다 보면 온갖 종류의 추위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휘몰아 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옷이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다. 우린 괴로운 심정을 하소연할 곳이 없거나 홀로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닥쳐올 때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면서 밤을 지새우곤 한다. 삶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절감하면서.. 113p

 

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엔 비 오는 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젓한 카페에서 빗소리오 ㅏ함께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저 비 내리는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 이처럼 정교함을 요할진대, 사람을 주고 받는 과정은 오죽할까 싶다. 우린 사랑에 빠지거나 심지어 벗어날 때도 상대를 향해 감정의 촉수를 세워 사랑의 생성과 종말을 감지한다. 섬세하고도 정교하게. 138p

 

단군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을 몸소 실천하는 마음으로 그런 콘텐츠를 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지나친 과시는 결핍의 산물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에게 부족한 걸 숨기려는 목적으로 작은 성과를 부풀리는 게 아닐까? 정말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사생활을 쓸데없이 노출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최대한 조용히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남보다 많이 이룬 사람은, 남보다 잃을 게 많은 사람이기도 하니 말이다. 184p

 

대부분 사람은 본인에게 없는 것을 누군가가 손에 쥐고 현란하게 흔들면, 거기에 정신을 빼앗긴다. 충분히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그 무엇 때문에 평정심을 잃고 보기 좋게 현혹당한다. 결핍을 숨기려는 과시 앞에서, 결핍으로 물든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애처로운 일이다. 185p

 

화의 원인과 배경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못하면서 소위 '분노 조절 장애'때문에 잘못을 저질렀다고 변명하는 사람들을 나는 기이하게 여긴다. 백번 양보해서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데 정말 곤란을 겪는다면 마동석 배우나 추성훈 격투기 선수 앞에서도 분노를 표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은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골라 뒤틀린 불만과 내면에 축적된 분노를 일시에 폭발시키는 '선택적 분노자'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비굴하지 짝이 없다. 205p

 

내 삶의 방향키를 내게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이 잡도록 내버려두는 건 온당하지 못하다. 악플이 달리기 시작할 즈음 나는 죽기 직전까지 펜을 내려놓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날 이후 내 마음속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진하게 새겨졌다. '타인이 건네는 칭찬뿐 아니라 비난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오래 일할 수 있다!' 215P

 

상대의 허물을 발견하는 순간 습관적으로 지적을 늘어놓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도, 뒤끝이 없는 사람도 아니다. 그들은 말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217p

 

어떤 면에서 현재를 꿋꿋이 버틴다는 건 몸과 마음을 건사하면서 후일을 도모한다는 걸 의미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더라도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묵묵히 버티고 있다면, 스스로를 힐난하거나 자책할 필요가 없다. 꾸역꾸역 현실을 견디면서 세월을 건너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277p

 

하나의 문 앞에서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긴장할 필요가 없다. 종류가 다른 무수한 문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281p

 

인간은 유한한 시간에 갇혀 있다.

삶은 어떤 면에서 한때의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지구라는 생명의 바다에서

죽음이라는 육지를 향해 헤엄쳐 나아간다.

저마다 그 속도만 다를 뿐이다.

...

어쩌면 우린 죽음에 깃든 쓸쓸함과 두령무을 조금이라도 떨쳐내기 위해 나 아닌 다른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오직 사랑만이 삶의 유한성에서 비롯되는 허무와 공포를 사그라들게 만든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점 남루해질 수밖에 없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누일 보편의 은신처는 사랑밖에 없다. 2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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