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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독서

mimi memo 2023. 5. 31. 10:47


독서란 원래 즐거운 놀이다. 세상에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 따위는 없다. 그거 안 읽는다고 큰일나지 않는다. 그거 읽는다고 안 될 게 되지도 않는다.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것을 읽었든 지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으면 최소한 현재로서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한 줄의 문장, 또는 한 단어가 기억에 남아 있다면 내게 그 책은 그 한 줄, 또는 그 한 단어다. 만약 책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책을 읽던 시간과 장소의 감각이 되살아난다면 내게 그 책은 그 감각이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지나간 인연들이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 안에 생겨났던 그 순간의 감정들이다. 헛된 허세나 과시욕 따위를 배제하고 그때 그 책의 무엇을 왜 좋아했고, 그로 인해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책을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방법들' 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솔직히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두 가지다. 어떤 책이든 자기가 즐기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혼자만 읽지 말고 용기 내어 '책 수다'를 신나게 떨어야 더 많은 이들도 함께 읽게 된다는 것. 그걸 위해 기억 속의 책들을 찾아간다. _ 프롤로그
 
어린 시절의 나는 책 한 권만 있으면 싫은 상황, 싫은 곳에서도 용케 틀어박힐 구석을 찾아내어 책 속으로 잘도 피신하곤 했다. 거대한 우주선에서 탈출하는 구명정처럼, 내게는 그리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외부와 적절히 차단되는 안온한 작은 공간만 있으면 족했다. 
물론 나이를 먹은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복잡한 삶을 살고 있지만, 험한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 해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최후의 보루 하나는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든든하게 해준다. 다닐 도서관 하나민 있어도, 서점 하나만 있어도, 몸을 누일 방구석에 쌓아둔 내 취향의 책 몇 권만 있어도. 30p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굳이 내 걱정을 해주는 척하며 비아냥대는 사람, 축하해주는 척하며 비틀린 심사를 드러내는 사람, 건설적인 비판을 해주는 척하며 험담하는 사람들이 지치지도 않고 나타나곤 한다. 어릴 적에는 나도 욱하며 어떻게든 마주 비꼬아주거나 반박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게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면 그건 반박하든 해명하든 싸우든 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 취향의 사람들도 아니고 내 인생에 아무 상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내게 관심이 있으니 험담이든 뭐든 하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나를 에워싸고 그들의 언어로 떠들어대는 릴리퍼트 소인들일 뿐인 것이다. 그걸 깨닫고 나니 나만의 '함담에 대처하기' 솔루션이 절로 생겼다. 내가 찾은 마법의 단어는 이거다. "그러게(싱긋 미소 지으며)", 상대가 손위인 경우에는 "그러게요(싱긋)". 핵심은 산들바람같이 상쾌해야 한다는 것. 진심으로. 말은 저 한마디 '매직 워드'로 족하다. 32p
 
처용가. 그리고 삶에 대한 어떤 태도
집착하지 않고, 가장 격렬한 순간에도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고, 놓아야 할 때에는 홀연히 놓아버릴 수 있는, 삶에 적절한 거리를 둘 수 있는 그런 태도랄까. 그렇다고 아무런 열망도 감정도 없이 죽어 있는 심장도 아닌데 그 뜨거움을 스스로 갈무리할 줄 아는 사람. 상처받기 싫어서 애써 강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삶이란 내 손에 잡히지 않는 채 잠시 스쳐가는 것들로 이루어졌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눈부시게 반짝인다는 것을 알기에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주 드물다는 건 어린 시적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에 동경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37p
 
구운몽도 그렇고 쿠오바디스도 그렇고 난 저자의 의도나 작품 주제와 관계없이 세속적이고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것들에 매혹되곤 했다. 헤세의 '지와 사랑'을 읽으면서도 너무나 당연히 나는 늘 유혹에 빠지고 사고를 치고 자유분방한 골드문트 쪽이었다. 경건하고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나르치스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영원하고 초월적인 것 따위가 왜 매력적이란 말인가. 그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다 꺼진 후의 회색 잿더미에 불과하다. 덧없고 유한하고 표피적인 감각에 불과한 것들이야말로 바로 그렇기에 애가 타도록 매력적인 것이다. 50p
 
한 권의 책이 갖고 있는 많으 요소 중에서 나는 유독 문체에 좌우되는 편이다. 문장이 내 취향인 글은 내용이 아무리 시시해도 술술 읽게 된다. 반대의 경우 아무리 내용이 훌륭해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덮는다. 방금도 책 두 권을 폈다가 5분만에 둘 다 덮었다. 하나는 너무 거창한 관념어가 뺵빽하게 들어찬 포르테 범벅의 글, 또하나는 너무나 뻔하고 익숙한 언어의 반복이라 특별함이라곤 한구석도 없는 글. 53p
 
서점에서 책을 뒤적거리다 내 취향의 글을 발견할 때의 쾌감은 대단하다. 다른 책들은 억지로 꾸역꾸역 입에 쑤셔넣는 느낌이라면, 문체가 내 취향인 책은 잘 만든 메밀국수 면발이 호로록 넘어가듯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그 재미 때문에 서점 들르기를 멈출 수가 없다. 61p
 
인간 심리라는 것이 묘해서 가장 바쁠 때 오히려 여가에도 독서나 운동, 글쓰기 등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되고, 한가할 때는 그냥 소파에 늘어져 티브이만 보게 된다. '상대적 선호의 법칙'이랄까, 지금 해야 하는 일이 하기 싫을수록 그외의 모든 일들이 평소보다 훨씬 재미있게 느껴진다. 인생에는 어쩔 수 없이 적절한 긴장이 필요하긴 한가보다. 123p
 
누구에겐 결핍은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누리는 타인의 존재를 편하게 받아들일 만큼 수양이 된 사람은 많지 않다. 꼭 누구를 착취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부를 만끽하는 모습만 꼴 보기 싫은 게 아니다. 정당하게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성취를 누리는 당연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의도적인 과시로 비쳐 증오를 낳을 수도 있다. 그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인간 세상은 원래 부조리하다.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연결되어 있다. 나 홀로 관계로부터 단절되어 세상과 영향을 주고받지 않고 사는 건 불가능하다. 관계의 촘촘한 거미줄 속에서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으며, 또는 도움을 주거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127p
 
독서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세상에 쉬운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독서란 정처 없이 방황하며 스스로 길을 찾는 행위지 누군가에 의해 목적지로 끌려가는 행위가 아니다. 132p
 
너무 열심히 웃기려는 유머는 썰렁한데, 시큰둥하게 툭 던지는 유머는 딱 내 취향이다. 142p
 
아무리 명저라도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고 그 시대에만 의미 있었던 부분도 많다. 우리가 취할 것은 그중에서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가진 몇몇 부분들인데, 그런 부분들은 실상 교과서에서도 실려 있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졸아서 그렇지 이미 다 배운 '상식'인 것이다. 169p
 
책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몇 가지를 글로 적어보거나 남과 수다를 떨어보는 것이다. 나는 페이스북에 독서노트 삼아 짤막한 독후감을 끄적끄적 올리곤 해왔는데 결국 그 책에서 내가 내 것으로 흡수한 것은 달랑 그게 전부인 것이다. 그거면 내겐 충분하기도 하고. 170p
 
우선 책은 단편적인 영상이나 인터넷 게시물보다 가볍게 시작하기 어려운 대신, 별 내용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단지 습관적으로, 중독적으로 계속 보게 되지는 않는다. 종이책은 두께와 무게라는 물리적 실체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무한정 넋 놓고 보게 되지는 않는다. 무한한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적절한 순간에 멈추게 만드는 피로감도 필요한 것이다. 더 중요한 장점은 보다가 딴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티브이는 기본적으로 몰입해서 보는 매체다. 콘텐츠가 좋으면 좋을수록 더욱 몰입하게 된다. 나의 속도에 맞춰 제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콘텐츠의 속도에 내가 맞춰 수용해야 한다. 인터넷은 그렇지는 않지만 실시간으로 쏟아져나오는 무수한 게시글과 댓글들의 속도가 수용자를 수동적으로 만들기 쉽다. '웹서핑'이라는 표현 그대로 링크를 타고 여기저기를 아무 생각 없이 둥둥 떠다니며 표류할 때가 많다. 이와 달리 책은 수용하는 속도를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자극받는다. 내 경우, 좋은 책을 읽을 때면 머릿속에서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읽다 멈추기를 반복하게 된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발견하면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귀퉁이를 접기도 한다. 지나고 보면 바로 이 멈추었던 순간들이 독서 경험의 핵심이다. 수동적으로 내 감각 속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고 마는 것들은 흔적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은 내 것이 된다. 책은 빈 공간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끊임없이 여백을 보충하게 만든다. 상상력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만든다. 즉각적인 반응이 특징인 뉴미디어 시대에 멈추어 생각하게 만드는 독서의 특징은 큰 의미를 갖는다. 무조건적 수용이 아니라 일단 유보하고, 의심하고, 다른 측면을 생각해보는 지성적 사고의 훈련은 독서에서 출발하는 것이 여전히 정도라고 본다. 스마트폰의 보급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라며 흥부하는 이들이 있는데, 자극적인 기사 몇 줄만 읽고 바로 화르르 불타올라 십자군전쟁에라도 나선 기사가 된 양 개인 신상을 털고 '집단 다구리'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미래가 두려워질 뿐이다. 하긴 십자군전쟁도 대중의 열정을 악용한 사기에 가까웠으니 인간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집단지성'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남용하는 이들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시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나치 시대의 성실하고 평범한 독일인들에게 과연 집단 지성이 발동했나? 개인이든 집단이든 지성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야만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의 직접민주즈의란 공포일 뿐이다. 177p
 
다행이도 글쓰기 대중화의 시대에 태어나 책 쓸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생태계 종 다양성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이 또한 하나의 스타일이라고 주장하며 계속 써보고 싶다. 눈높이 높은 독자분들이 혀를 차며 글이 난삽하다고 야단을 치시면 죄송함다, 실은 저는 에이스가, 아니어서요, 라고 고개를 꾸벅 하며 말이다. 그럴 만큼 책을 쓴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굳이 쓸 리 없다. 그 재미 중 첫번쨰는 의외성이다. 글이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또는 엉덩이로 쓰는 것 같다.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무엇을 옮겨적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아이디어 조금만 있는 상태에서, 때로는 그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자판을 두들기다보면 스스로도 생각 못했던 표현이나 명제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가끔 정말 뿌듯한 똥이 나오는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나 스스로는 대견하게 느껴지는 구절이 튀어나올 때면 등골이 짜릿하다. 그 맛에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181p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굳이 사랑받고 싶지 않다. 무서운 사람도 많고 싫은 사람도 많거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편해서 좋은데, 그들로부터도 사랑까지는 부담스러우니 호감 정도 받으면 충분하다. 책도 마찬가지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려 노력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내가 쓰는 글을 좋아하는 취향의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님들아, 번식해라. 182p
 
어차피 글쓰기도 진화심리학적으로는 인스타에 셀카 올리기, 수컷 공작새의 꼬리 펼치기와 다를 바 없을 거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자기 장점을 어필하여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자원을 얻기 위한 투쟁이다. 인정욕구와 결부되지 않은 표현 욕구란 없다. 다른 점이라면 그걸 어느 정도로 노골적으로 하냐느, 세련되게 감추며 하느냐가 있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자기가 지금 잘난 척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는 있느냐, 그것조차 모를 정도로 바보냐 정도일 것이다. 다시 한번 겸손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고 싶기에 '판사유감'때부터 언제나 일종의 경고문처럼 나는 원래 이기적이고 찌질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에 불과하고, 책에 나오는 글은 그런 나조차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때때로 느끼게 되는 기특한 생각들에 불과함을 밝히고 있다. 글이란 쓰는 이의 내면을 스쳐가는 그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그래도 가장 공감을 받을 만한 조각들의 모임이다. 나는 그래서 책이 좋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커피 두 잔값으로 타인의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조각들을 엿보는 것이다. 그것도 쓴 사람 본인이 열심히 고르고 고른. 그게 싫고 인간들의 비열함과 어리석음, 그악스러움을 보는 게 좋다면 굳이 돈 들여서 책을 살 필요가 있나? 인터넷에만 접속해도 공짜로 무수한 샘플을 구할 수 있는데. 그건 공기와도 같이 이미 세상에 가득차 있다. 184p
 
좋은 글은 결국 삶 속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문장 하나하나가 비슷하게 뛰어나더라도 어떤 글은 공허하고, 어떤 글은 마음을 움직인다. 그렇다고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삶은 글보다 훨씬 크다. 열심히 살든 되는대로 살든 인간은 어떻게든 각자 살아야 한다. 되는 대로 살 때 더 좋은 글이 나오기도 한다. 그저 솔직히 자기 얘기를 계속 쓰는 것 정도가 글쓰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184p
 
돌이켜보면 나는 책을 통해 타인을 발견하고 세상을 발견해왔다. 직접 사람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어릴 적부터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이방인들 사이에 던져진 고립된 존재로 스스로를 생각해왔다. 타인들이 성큼 내게 다가오면 불쑥 겁부터 난다. 그것이 나의 한계다.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다. 책이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가느다란 끈이었다. 책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고통, 욕망을 배워왔다. 간접경험은 당연히 직접경험만큼의 깊이는 없다.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깊이 이해해본 적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남들의 삶을 읽기라도 함으로써 조금씩 조금씩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며 살아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190p
 
나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 무지는 공포와 혐오를 낳는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의 모든 언어가 소음으로만 들리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진다. 소음과 위협, 공포에 둘러싸여서 사는 것은 불행하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면 의외로 타협하고 수용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나에게도 평화를 준다. 동시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똘아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준다. 미디어의 발달로 그 어느 시대보다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은 더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귀를 닫아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당장 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처지의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세상에 나 빼고는 다 정신 나간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 193p
 
 줄다리기는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아니라 중간에 맨 손수건이 약간 움직이는 것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중간에 있는 이들이 제자리에서 튼튼하게 버텨주지 않고 시늉만 하고 있으면 줄은 한쪽으로 확 끌려가고 만다. 중간자들은 성실한 독자여야 한다. 들어야 할 진짜 목소리를 듣고, 작은 한걸음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내디뎌야 한다.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이를 악물고 외쳐대는 욕설 때문에 이들을 비웃어서도 안 된다. 결국 가장 먼저 넘어져 뒹굴고 흙투성이가 될 것은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195p
 
시대는 바뀌어도 인간의 욕망과 감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간들의 오욕칠정을 풍부하게 담아낸 고전은 거울이다. 그 앞에 서는 이들은 누구나 자기의 모습을 발견해내고 마는 것이다. 204p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의감이 아니다. 오류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의감이야말로 가장 냉혹한 범죄자일 수 있다. 자신이 믿는 정의 때문에 분노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나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또는 틀렸어도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분노하고 있는 대상보다 더 위험한 존재다. 219p
 
미래에 대한 꿈을 소수만 꾼다면, 결국 그들만이 미래의 주인이 될 것이다. 222p
 
여행은 숙제가 아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지 무슨 거창한 목표 완수가 여행의 목적이 아니다. 아마 인생도 그럴 것이다. 235p
 
나이를 먹을수록 공간에 민감해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야말로 어떤 공간이든 가리지 않고 책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책 읽기 좋은 공간을 맛집 찾듯이 찾게 된다. 244p
 
나는 의자에도 예민하다. 완벽하게 편안한 의자가 없을까 찾아다니며 온갖 좋다는 의자에 낮아보았지만 '그닥'이었는데 우연히 의외의 천생연분을 만났다. 아웃도어용 접이식 의자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헬리녹스의 선셋체어홈인데, 휴양지에서 해먹에 누울 때처럼 몸이 푹 파묻히는 느낌이 좋다. 여기다가 입으로 바람 넣는 베개를 목 쪽에 장착하면 완벽하다. 245p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책 '이동진 독서법'을 읽다가 깊이 공감하는 구절을 만났다.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라는 구절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이구아수폭포를 보고 싶다, 남극에 가보고 싶다 등 크고 강렬한 비일상적 경험을 소원하지만 이것은 일회적인 쾌락에 불과하고,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 자체가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마치 동화 '파랑새'를 연상시키는 일견 익숙하고 평범해 보이는 말이지만, 실은 굉장히 과학적인 말이기도하다. 인간의 행복감에 관한 심리학 연구 결과는 공통적으로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말한다. 어떤 '큰 것 한 방'도 오래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솔직한 자신의 기준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을 찾아야 하낟. 253p
 
감히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삶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이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습관이 행복한 사람, 인내할 줄 아는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 책과 함께하는 사람. 2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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