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롱테이크로 촬영한 무편집본이다. 지루하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진다. 반면 다른 사람의 인생은 편집되고 보정된 예고편이다. 그래서 멋져 보이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나 혼자만 힘든 것같이 느껴진다. 결국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에 가득 차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처럼 불행한 사람들은 갑질을 하고서도 갑질인지 모른다. 인정해주는 곳이 없으니 자꾸 "내가 누군지 알아!"하고 소리친다. 인간관계에서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인과관계를 처리하는 회로가 무너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를 알아달라고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스스로 충만하면 남의 인정을 갈구할 필요가 없으니까. 82p
사회는 무책임하게도 개인에게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라고 떠넘기고 개인은 새파래진 얼굴로 우물쭈물 답을 찾고 있는데, 그러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반대로 생각하면, 별 쓸모가 없는데도 살아 있으니 더 대단한 일 아닌가. 그러니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86p
이런 기도문이 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할 수 있는 일도 놓치게 된다.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시간은 가치 있는 데에만 쓰기에도 부족하고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90p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결국은 상대의 '의외성'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살마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지점을 유심히 보고, 거기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일이다. 취미나 말버릇, 취향 같은 것에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아내 그 위에서 조금씩 서로의 색을 덧입히는 커스터마이징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별하고 슬퍼하는 사람 앞에서 '세상에 남자(여자)는 많아'라고 하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게 그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모두 단점이 있으며 빈틈과 약함, 예측 불가한 모습들이 있다. 많은 욕망과 여러 관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이나 외부의 조건에 맞추어 그에 맞는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만, 인간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입체적 존재다. 소설가 김훈이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 같은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것이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라고 했는데, 나는 이 말을 아주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관된 모습을 연기할 필요는 없다. 나만의 독창적인 캐릭터는 의외의 모습들이 모여 완성된다. 106p
취향을 통한 부르디외의 문화자본이나 구별짓기 같은 이론을 설명할 것도 없이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취향은 대개 당사자의 경제적 수준과 성장 환경까지 예측하게 한다는 걸. 취향은 그가 속한 계층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 취향은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멋진 친구를 따라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고 방식이나 말투를 흉내 내기도 하면서 우리는 어른이 된다. 하루키를 좋아해 그처럼 일상적으로 달리고 맥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봐왔다. 108p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면 내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판단을 뒤로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며, 그렇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다. 무언가를 보고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은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이고,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은 더 많이 보는 사람일 것이다. 더 많이 보는 사람은 여러 입장을 모두 보는 것이나 다름 없음으로, 자신이 살아보지 않았던 삶까지 살아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도 유일한 살마이 될 수 있겠지. 111p
결핍이란 그 자체로는 연약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무엇이라고 믿고, 남에게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위대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예술가가 작업하는 방식도 이와 같다. 한국처럼 서로 자존감을 낮추는 데 바쁘고 권위적은 곳일수록 더더욱 이런 힙합 정신이 필요하다. 남들이 하는 평가를 그대로 믿지 않고, 권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리스펙 하는 것. 그렇게 되면 누군가 "가만히 있으라"라고 할 때,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세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140p
남에게 그럴싸해 보이기란 얼마나 쉬운가. 사람들은 자신은 적당한 가면을 골라 쓰고 세상에 나서면서도 남들은 가면을 벗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또 자신은 단순하게 정의된 걸 싫어하면서 남에 대해서는 다 아는 듯이 판단하곤 한다. 나는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결혼을 했다. 또 잘 웃는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말한다. "너는 아무 걱정이 없겠다." 하지만 직장이 없고 미혼이라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듯이, 그럴싸해 보이는 삶도 그게 다는 아니다. 행복은 여름날 길에서 먹는 아이스크림 같다. 아주 잠깐 좋고 금세 사라져버리니까. 179p
일상에서 무례한 사람이 당신을 평가하거든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넘겨버려라. '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몰라'하면서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는 나를 잘 모를뿐더러 나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지도 않는다. 몇 년 후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세요?"하고 물어보면 분명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 말을 곱씹는 게 억울하지 않은가? 나의 과정을 모두 아는 사람은 나뿐이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려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사람들이 말하게 두고, 나는 나의 일을 하러 가자.' 186p
사람은 사람과 함께 있어 보다 커지는 경우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봐 주는 사람이 있다. 그 하나로도 나는 운전을 아무리 오래 해도 좋고 저금이 바닥나도 좋다는 기분이 들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 바다의 뚜껑에 나오는 말이다. 200p
어른이 되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싫은 사람을 덜 봐도 된다는 것과 친구에 덜 연연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살마을 만나며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도 하고 나쁜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도 관찰해보니, 행복감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이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깊이 있는 관계는 함께한 시간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나는 인간관계에서 무리하지 않는다. 알고 지낸 지 오래됐지만 만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당분간 만나지 않고, 뾰족한 말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여러 번 경고하다 정도가 심해지면 관계를 끊는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을 최대한 옆에 두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더 좋은 사람들이 다가오곤 했다. 나 또한 모든 관계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 노력하게 된다. 우리는 관계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을 다음 사람에게 옮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보석함에 보석들을 골라 담듯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난 언제나 주변 사람 때문에 울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다가가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 사람보다 네가 훨씬 소중해. 옆에 있으면 울게 되는 사람말고 웃게 되는 사람을 만나." 203p
농담에는 대범함이 필요하다. 농담을 하다 보면 그동안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많이 참아왔는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지나치게 남들의 눈치를 보면서 남들의 작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사람은 결국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다. 212p
"재능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스스로 있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이 중요한 거다." 박찬욱 감독
회사는 기본적으로 이익 창출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집단으로 꾸려진 임시 모임이다. 회사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이해관계가 같은 동료일뿐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가치관을 가진 동료가 있을 수 있고, 면전에서 나와 대립하는 동료가 있을 수 있다.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사려 깊게 대하기가 어려워 무심코 말이나 행동으로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 모든 일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이유를 곱씹다 보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다. 특히 상대의 행동을 넘겨짚고 곱씨는 버릇을 없애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자꾸만 의도를 곱씹다 보면 피해의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는 상대의 반응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드러난 사실 자체만 봐야 한다. 그처럼 적당한 무심함과 둔감함은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중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이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스트레스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내가 만난 성공한 직장인의 롱런 비결이 이것이었다. 244p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지 말고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내가 자꾸 되뇌는 것은 이것이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가치 없는 곳에 쓰지 말 것. 오늘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 248p